지독한 하루 - 남궁인
오늘은 여운을 남기는 책 중 슬픔과 고민을 진하게 남기는 책인 남궁인의 지독한 하루라는 책을 소개해 보려 합니다. 책은 응급실 의사인 남궁인이 겪은 일들에 대해 쓴 기록인데 이 내용들이 밖에서 상상하는 것과 직접 겪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직접적으로 알게 되었던 책입니다.
작가인 남궁인은 응급의학과 의사로 수많은 환자와 자살자, 시신을 만나게 되는 응급실에서 자신이 겪은 일상적인 일들 그리고 그 일들로 인해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무거운 주제에 남궁인 작가의 필체까지 더해지니 그 상황들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 해 더 읽기 힘들었던 책이었습니다.
<만약은 없다>에 이어 두 번째로 사람들에게 응급실이라는 공간에 대해 소개해준 남궁인 작가의 지독한 하루는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밝은 세상 속 많은 일들이 있고, 그중 가장 취약하고, 우울하며, 힘겨운 응급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한편으로는 걱정을 또 한편으로는 위로를, 또 공감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책 리뷰
예기치 않던 사고나 병은 우리의 삶을 뒤흔든다. 병이 나거나 사고를 당한 사람은 물론 환자와 보호자를 지켜보아야 하는 의사까지도. 「만약은 없다」로 우리에게 응급실의 모습을 이야기했던 남궁인이 신작 「지독한 하루」를 펴냈다. 전작과는 이야기하는 시점이 조금은 다르지만 그 어두운 분위기와 무게감, 슬픔, 분노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시신이 되어버린 한 명의 인간,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터져나오는 급작스러운 오열과 몰아닥치는 슬픈 공기, 지극한 슬픔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만 감정 없이 버티기는 어려웠다. 나는 사망선고를 내뱉고 숨을 들이쉬자마자 폐가 슬픔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그를 둘러싼 과거와 현재의 순간이 머릿속에 엉키며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라 도저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 P.12
남궁인은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의사 남궁인이 아닌 작가 남궁인의 시점으로 기록했다. 나에게 의사는 죽음을 곁에 두고 살지만, 항상 건강하고 열정이 넘치는 모습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만약은 없다」에서 남궁인은 드라마에서의 의사가 아닌 현실에서의 의사를 보여준다. 그들도 분명 슬퍼하고 무서웠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환자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한다. 작가는 우리가 볼 수 없었던 의사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남궁인이라는 작가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응급실은 흔히 지옥에 비유된다. 밤을 새우는 과중한 업무강도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응급실에서는 사회의 치기 어린 난동이나 폭언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 P.48
전작에서는 환자와 의사에 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 「지독한 하루」에서는 환자를 둘러싼 보호자와 시스템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책의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보호자와 시스템을 생각해 본다면 썩 나쁘지 않은 상황일 것이라 생각이 든다. 의사를 믿고 진찰을 받는 환자와 정성스럽게 간호하는 보호자. 의료인폭행가중처벌법의 도입과 중증외상센터와 같은 시스템의 시행.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았다. 어린아이는 학대를 받아 응급실로 실려 오고 보호자는 의사를 믿지 않고 폭언과 폭행을 한다. 믿고 싶지 않지만, 작가는 한 번 더 응급실의 민낯을 보여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어린아이가 학대를 받아 응급실로 들어온 이야기이다. 잔인하고 끔찍해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다. 어느 날 응급실에 2개월 된 아이가 들어온다. 아이는
지적장애인인 듯한 어머니와 교회 사람들과 함께 들어온다. 아이가 힘이 없어 데려왔다는 목사의 말을 듣고 의사는 검사를 시작한다. 검사 결과는 참담했다. 아이는 학대를 받고 있었다.
“2개월 된 아이가 와서 방금 CT를 찍었는데, 한번 봐줄래?”
“응, 마침 컴퓨터 앞에 있어. 잠깐만.”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마우스 휠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정제되지 않은 동료의 외침이 수화기를 타고 넘어왔다.
“씨발. 어떤 개새끼가 애 머리를 이따위로 만들어놨어. 미친새끼. 이 새낀 멀쩡히 밥 먹고 숨 쉬고 있을 것 아냐.” - P.55
아이는 치료를 받고 의사는 경찰에 아동학대를 신고한다. 하지만 아동학대를 한 아버지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학대를 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경찰과 아버지가 떠난 후 의사는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러 간다.
“선생님 아이가 분유를······”
“기운이 없어서 잘 못 먹습니까?”
“아니요 너무 잘 먹어요······ 아이가 입원할 때 엄마분께 지금까지 무엇을 먹였냐고 재우쳐 물어봤더니, 뭘 먹일지 몰라 베지밀만 사다 먹였다고 하더군요. 2개월 내내요. 아이용 분유를 처음 먹어서 아이가 너무 맛있어하는 거예요.주는 대로 다 먹고 있어요.” - P.62
책을 한 번에 쭉 읽어 내려가는 게 어려웠다. 보통 감당하기 힘든 일이 있으면 주의를 돌리려 다른 일을 하곤 한다.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책상도 한번 정리하고 식은 커피를 다시 타겠다고 앉아 커피를 내리기도 했다. 책이 어려워서 혹은 책이 재미없어서가 아니었다. 책에 담겨있는 감정들, 상황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 맛에 남궁인의 책을 읽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일상에서 강제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보게 한다. 책을 읽고 나면 사회는 문제 투성이고 나 또한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좋다.
의사나 의료인에게는 항상 보는 익숙한 장면일지는 모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그들이 겪는 수많은 고뇌와 슬픔을 보여준 책이었다. 올해 안으로 「독서 일기」라는 책을 한 권 더 내신다고 하는데 그 책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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